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먼 나라/좋은 사이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극소수의 [[반한]][* 정확히는 [[반미]]], [[반서방]] 국가들을 제외하면 주요국들과는 관계가 매우 가깝다. 특히 [[친서방]] 및 [[아세안]] 국가들과 관계가 깊다. * '''[[한국-남아프리카 공화국 관계|대한민국 - 남아프리카 공화국]]''':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크게 지원하였고 친서방 및 [[반공]] 정책을 표방해 적극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1995년]]에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방한해 큰 환영을 받았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둘 다 [[노벨평화상]]을 안기는 명예를 가지게 되면서 두 나라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 '''[[한국-네덜란드 관계|대한민국 - 네덜란드]]''': 6.25전쟁때 군사 파병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방문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을 이끌어내는 전설적인 신화를 창조하여 우리나라 국민들은 히딩크를 푸른 눈의 영웅으로 떠받들어 네덜란드에 수많은 호감을 보냈고 후에 히딩크가 우리나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네덜란드 국민들도 역시 이런 우리나라를 보고 우리나라에 수많은 관심과 호감을 보냈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도 일본에게 압력을 넣고 있는 중이며 일본이 [[유엔]]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는 걸 반대하고 있다. 네덜란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입은 국가. 때문에 [[서유럽]]에서는 드물게 [[일본 제국]]에 대해 나치급으로 강한 증오를 표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 '''[[한국-네팔 관계|대한민국 - 네팔]]''': [[안나푸르나]]는 등산을 즐기는 한국인 관광객이 트레킹 코스로 상당히 많이 찾을정도로 인기이고 네팔 현지에서는 한류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엄홍길]] 등의 [[산악인]]들이 지원을 많이 해주어서 한국의 이미지가 상당히 호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주변국들에 비해서는 관계가 덜 좋은 편이다. * '''[[한국-노르웨이 관계|대한민국 - 노르웨이]]''': 전체적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다. 노르웨이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노르웨이의 자연을 예찬하며 노르웨이인들 역시 한국에 즐길거리가 많다며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한국에 즐길거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노르웨이에 할 게 별로 없는 탓도 있다. 아름다운 자연이야 외국인들이 와야 감탄하지 이걸 맨날 본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노르웨이인들은 자국의 자연을 좋아하기는 한다.] 여담으로 한국인과 노르웨이인의 정서에는 은근히 공통된 속성이 많은데,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는 것, 산책이나 하이킹을 즐긴다는 것, 근면해 보이면서도 은근히 게으름을 피운다는 것, [[중국|이]][[일본|웃]] [[스웨덴|나]][[덴마크|라]]와 혼동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는 것 등이 있다. * '''[[한국-뉴질랜드 관계|대한민국 - 뉴질랜드]]''': [[6.25 전쟁]] 때 [[뉴질랜드군]]은 [[한국군]], [[캐나다군]], [[호주군]]과 같이 가평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의 침략을 막기도 하고 현재에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호주군]]과 같이 합동훈련을 하기도 한다. [[호주]]와 더불어 [[오세아니아]] 외교에서 중요한 국가다. * '''[[한국-대만 관계|대한민국 - 대만]]''': [[중화민국]]이 [[중국 대륙|대륙]]에 있던 시절부터 돈독했다. 당시 [[중국국민당|국민당]]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그리고 [[한국광복군|광복군]] 내 장교들도 [[대만군|중화민국 국군]]과 교류가 많았다. 그리고 [[김구]], [[김신]]과 [[장제스]], [[장징궈]]는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장 [[김신]]이 [[대만]]에 [[주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대사]]로 파견될 때 [[장제스]]와 [[장징궈]]가 [[김신]] 대사를 환영했다. 참고로 [[화교/대한민국|재한화교]]도 [[대만]], [[대한민국|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1992년 [[한중관계|한중 수교]] 이후 단교[* 사실 원해서 단교했다기 보다는 [[중국]]이 [[하나의 중국]]으로 주장하면서 이 때문에 강제로 단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양국이 모두 [[반중/국가별 현황|반중]] 감정이 쌓인 것이다.]되면서 관계가 경색되기는 했으나 [[한국-대만 관계]]가 개선되면서 [[대만]]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재수교도 논의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국 - 대만 간 산업 교류, 문화 교류 등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재수교를 하려면 중국과 단교를 해야만 가능한데 쉽지가 않은 것이다.] 후술하지만 양국의 공통점은 [[반중|중국과는 적국]]이라는 점이다.[* 대만 역시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한국 문화를 중국 것이라고 왜곡하는 국민들]]에 대한 거센 비판을 하였다. 이건 이웃나라 일본 역시 중국의 이러한 것에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이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 * '''[[한국-덴마크 관계|대한민국 - 덴마크]]''': 북유럽의 또 다른 우방국이며, 한국인들 대부분이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이유로 수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덴마크 또한 북유럽에서 한국을 신중히 바라보고 있다. * '''[[한독관계|대한민국 - 독일]]''': 19세기 조선 시절에 첫 수교를 하였고, [[6.25 전쟁]]이 휴전된 이후에 [[서독]]은 한국에 수많은 경제 원조를 보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냉전]]에 접어들면서 각 두 나라가 [[남북분단]]과 동서분단을 겪은 동병상련을 가지고 있으며, 후에 경제를 풍요롭게 일구어낸 [[라인 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을 둘 다 창조해 내기까지 했다. 게다가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던 시절에 서독은 [[광부]]나 [[간호사]] 등 많은 [[파독 근로자|일자리]]를 한국에 제공해줬다. 또한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도 한국을 경제적으로 많이 지원해줬다. 그리고 [[대한민국|한국]]과 [[독일]]은 [[남북통일]]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 '''[[한국-말레이시아 관계|대한민국 - 말레이시아]]''': [[한류]]의 인기가 대단하고, 2021년 말레이시아의 북한 범죄인 미국 인도조치로 [[북한]]이 일방적인 단교를 선언하면서 동남아시아 유일한 단독 수교국이 되는 등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한몽관계|대한민국 - 몽골]]: 대체로 관계가 좋은 편이다. * '''[[한미관계|대한민국 - 미국]]''': [[미국]]은 [[6.25 전쟁]] 당시 자유진영에서 가장 많은 군사를 보낸 자유진영 대표 참전국이었으며, 전쟁 휴전 이후 60년을 넘어 지금까지 '''[[한미상호방위조약|대한민국의 유일한 군사동맹국]]'''이다. 국민정서상으론 [[아폴로 안톤 오노]]의 금메달 도둑질이나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 [[2008년 촛불집회]] 등등 때때로 [[반미]]가 부각되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순간적인 국민감정이었을 뿐이며, 앞에 나온 시기를 제외하면 친미가 우세하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시책으로 친미 노선에서 벗어난 적은 정부 수립 이후 단 한 차례도 없다.''' 미국에게 대한민국은 전 [[아시아]]에서 [[일본]], [[대만]], [[싱가포르]], [[이스라엘]], [[인도]]와 함께 가장 중요한 우방국 중 하나이며, 일본, 호주와 함께 미국 [[태평양]] 전략의 삼대축 중 하나다. 공통점은 모두 [[반중|중국과는 서로 적국]]이다. * [[한국-미얀마 관계|대한민국 - 미얀마]]: 2010년대에는 한국-미얀마 간 경제 교류가 활발했으며, 문화적 교류도 활발했으나.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 이후 대한민국이 미얀마 군부에 제재[* 대한민국 정부는 미얀마에 최루탄과 중요 산업 물자 수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처음으로 외국에 독자적으로 실행한 대외제재이다.]를 하면서 경제적 교류는 더 이상 활발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이 시기에 미얀마 국민들의 친한 감정은 더 강해졌으며, 한국을 군부독재에서 벗어나고 선진국이 된 롤모델로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미얀마 운동 세력은 ‘이기면 한국같이 되고 지면 북한같이 된다’라는 표어를 외쳤다. 또한 미얀마 민주화 운동 시위대에서는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자신들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민 또한 [[동병상련|군부 독재의 경험]] 때문에 타 국가에 비해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자세한 것은 [[한국-미얀마 관계]] 문서의 [[한국-미얀마 관계#s-6|친한 감정]] 문단 참조. * [[한국-바티칸 관계|대한민국 - 바티칸]]: 1963년 국교를 수립한 이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요한 바오로 2세]]가 바티칸 교황으로서 첫 방한을 하였고 이후 프란시스코 교황이 방한하였던 인연도 있으며 김수환, 정진석 두 한국인을 추기경에 서임하였던 것을 계기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한국-베트남 관계|대한민국 - 베트남]]''': [[베트남 전쟁]]이라는 앙금이 있긴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양국의 관계가 매우 좋다. 베트남 GDP의 20%가 [[삼성]]에서 나올 정도로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이며,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베트남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430만 명에 달했다[* 2019년은 일본 불매운동 등의 여파도 있었고, 한국에서 베트남 관광 붐이 일었다. 그해 베트남을 찾은 관광객 1,800만명 중 한국인(430만명)은 중국(580만명)에 이어 두 번째였으며, 세 번째인 일본(95만명)과도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430만명이라는 숫자가 어느 정도냐면, 가장 대중적인 저가 항공사의 189석짜리 737-800으로 매일 62~63회의 비행기를 만석으로 띄워야 채울 수 있는 숫자다. 실제로는 대형 항공사나 진에어의 광동체기도 많이 투입되었으니 운항편수는 이보다는 적었겠지만.]. 특히 [[박항서]]의 국위선양으로 덩달아 베트남의 대한 감정이 더욱 좋아졌으며, 베트남 역시 [[한류]]가 매우 인기있는 나라 중 하나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일련의 사건으로 사이가 나빠졌지만 2021년 국가이미지에서 베트남이 신 조사대상 국가에서 선정된 결과에서 조사자의 95%가 한국을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 '''[[한국-벨기에 관계|대한민국 - 벨기에]]''': 현재 기준으로 수교한 지 120년이 넘었는데, [[네덜란드]]와 더불어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프랑스어]]의 영향 덕분에 유학을 가는 경우도 상당하다. 벨기에는 물론이고 다른 서유럽과도 매우 우호적이다. * '''[[한국-브라질 관계|대한민국 - 브라질]]''': 중남미 제1의 경제대국답게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 [[한국-부탄 관계|대한민국 - 부탄]]: 전반적으로 사이가 좋은 편이다. * '''[[한국-사우디아라비아 관계|대한민국 -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의 국가별 원유수입국 중 부동의 1위이며, 그만큼 사우디의 석유는 한국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우디에서도 [[K-POP]]의 인기가 많으며, 2022년 11월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가 방한하여 네옴시티와 관련된 협력 관계를 이어가기로 하였다. * '''[[한국-스웨덴 관계|대한민국 - 스웨덴]]''': 북유럽의 대표 우방국 중 하나이며, 2021 국가이미지에서 스웨덴 국민들 중 72.8%가 한국에 긍정적이라고 하고, 한국 국민들 역시 59.5%가 스웨덴에 긍정적이라고 답하였으나 이 설문들은 각각 500명과 1천 여명이 참여한 것이므로 전체적으로는 관계가 조금 먼 편이다. 그 이유는 영어권 국가들(미국, 영국, 캐나다, 남아공, 호주, 뉴질랜드 등)은 물론이고 스웨덴보다 훨씬 더 일찍이자 19세기에 조선 시절부터 수교한 비영어권 유럽의 대표 주요국이자 또한 강대국인 독일과 프랑스에도 밀려서 교류가 적은 것을 보면 굉장히 신기한 결과로 보이며 현재 기준으로는 수교한지 60년이 넘은 상태이다. 그리고 서로의 적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 * '''[[한국-스페인 관계|대한민국 - 스페인]]''': 대체로 유럽에서 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한국-아르헨티나 관계|대한민국 - 아르헨티나]]: [[1960년대]] 이후부터 비자면제 협정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1971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한 아르헨티나의 땅을 사들여 농민들을 불러들여 신원조회를 여러번 거쳐 엄선해서 보내 교민촌을 이루어 정착해 살게 했으며, 아르헨티나는 2002년 당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한일 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우리나라의 개최를 크게 지지한 적이 있어 우리나라와 아르헨티나는 이것이 인연이 되어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방국이 되었다. 더군다나 한일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일본]]을 지지하는 와중에 아르헨티나는 한국을 지지했다. 결론적으로는 공동개최했다. 참고로 박정희 대통령의 아르헨티나 이민계획에 의하여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더불어 남미에서 [[한국인]]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또한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커피 클럽]]의 일원이기도 하다. * '''[[한국-아일랜드 관계|대한민국 - 아일랜드]]''': 우리나라와 아일랜드는 각각 [[일본]]과 [[영국]]한테 혹독한 식민지배를 당한 공통점이 있는 동병상련을 겪었다. [[일제강점기]] 때 [[중국]] 단둥(안동)에 있던 이륭양행(怡隆洋行)이 [[아일랜드인]]이었던 조지 루이스 쇼(George L. Shaw)[* 그 당시 아일랜드가 독립하지 않은 아일랜드계 영국인.]가 세운 무역선박회사로 실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교통국 역할을 수행하며, [[독립운동가]]의 중국 망명, 독립자금 모집, 무기 구입, 연통제 운영 등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의친왕]]의 망명 시도까지도 이루어졌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 '''[[한국-에스토니아 관계|대한민국 - 에스토니아]]''': [[발트 3국]]에서 유일하게 한국과 단독 수교한 국가다. * '''[[한국-에티오피아 관계|대한민국 - 에티오피아]]''': 6.25 전쟁 발발 당시 에티오피아는 2치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의 침공에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과거가 있었고, 이러한 한국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이해관계 없이 한국을 돕기위해 칵뉴 부대를 파병하였다. 이후 공산화로 사이가 소원해졌지만 공산당이 무너지면서 한국과 관계를 회복하였고 한국에서 에티오피아는 6.25의 은혜로 잘 알려져 있다. * '''[[한영관계|대한민국 - 영국]]''': [[구한말]] 당시 영일동맹 채결 과정에서 일본의 한국 식민지 침략을 방조, 묵인한 흑역사가 있지만 [[6.25 전쟁]] 당시 미국 다음으로 병력을 많이 파병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 및 경제지원 등을 통해서 한국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유엔]]을 비롯한 기타 많은 [[국제기구]]에서의 활동을 통해 한국의 지위 향상, 보전 및 우호 증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계속했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남북관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 '''[[한국-오스트리아 관계|대한민국 - 오스트리아]]''': 보통 한국인들 대부분이 [[독일어]]의 영향 덕분에 자주 여행을 가거나 보통 클래식 작곡가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모차르트]], [[요제프 하이든|하이든]], [[프란츠 슈베르트|슈베르트]]의 나라로도 유명하다고 생각하고 오스트리아 역시 한국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 * '''[[한국-우즈베키스탄 관계|대한민국 -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대부분이 한국과 우호적이지만 우즈베키스탄은 그 중에서도 가장 한국에 우호적인 국가다. 1993년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한 대우자동차는 현재까지도 우즈베키스탄의 국민차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현 대통령도 손녀딸이 GM대우의 한국지사에서 일했다는 것을 언급하며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 '''[[한국-우크라이나 관계|대한민국 - 우크라이나]]''': 최근들어 북한과 단교하면서 [[말레이시아]], [[이라크]]와 더불어 남한 단독 수교국이 되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더욱 심각하게 적대적이라 보니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때문에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더욱 지지해주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기준으로 한국이 [[러시아]]의 비우호국으로 지정되었고, 이로 인해 [[한러관계]]는 잠시 악화되었으며,[* 한국 호감도 설문에서도 높은 경우는 500명~1000명 중에서의 기준일 뿐이지 전체적으로는 그리 호의적인 편이 아닌 것이다.] 지금도 꾸준히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많이 지원해주고 있어 우크라이나 역시 한국에 고마움을 느꼈을 정도이다. * [[한국-이스라엘 관계|대한민국 - 이스라엘]]: 중동 국가 중 대한민국과 가장 먼저 공식 수교한 국가이며, 군사 및 산업 분야에서 밀접한 관계를 취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권위주의 독재 정권 시절에 비정상적인 이스라엘 찬양을 할 정도로 이스라엘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이란과 시리아에 군사교류를 하는 북한을 적극적으로 비난하며 중동지역에서 북한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이후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이런 찬양은 줄어들긴 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 관계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다만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과의 문제 때문에 표면상으로는 일정 거리를 두는 면도 있으며 정부와는 다르게 한국인은 일부 이스라엘이 제 2의 나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와 반대로 북한과 적이라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편. * '''[[한국-이탈리아 관계|대한민국 - 이탈리아]]''': 유럽의 대표 3국(영국, 프랑스, 독일)보다는 조금 덜 가깝지만, 이 쪽도 한국에 꽤나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탈리아 역시 3개국 못지 않게 19세기부터 수교하였다. * '''[[한인관계|대한민국 - 인도]]''': 이 양국의 공통점은 [[중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인데, 인도가 원조인 [[카레]] 덕분에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인도 내에서도 [[오징어 게임]]의 흥행 이후 [[한류]] 열풍이 크게 일고 있다. * '''[[한국-인도네시아 관계|대한민국 - 인도네시아]]''': [[K-POP]]을 비롯한 [[한류]]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2010년대 후반 들어서 실시한 [[신남방정책]]으로 외교관계도 매우 좋아졌다. 그러나 일부 한국인들의 인종차별 문제로 인한 갈등 때문에 일부 인도네시아인들은 [[반한]] 감정이 있다. * '''[[한국-조지아 관계|대한민국 - 조지아]]''': 매우 관계가 좋다. 그리고 한국인은 조지아에 '''360일 동안 무비자로 체류하는 것'''이 가능하다! 관계가 좋더라도 무비자 체류는 최대 180일에 그치는게 대부분이지만 360일은 한국 역사상 최초이고 유일한 경우이다. 근처 [[우즈베키스탄]] 또한 관계가 매우 좋지만 '''30일''' 무비자 체류만 가능하다! * '''[[한국-캐나다 관계|대한민국 - 캐나다]]''': [[6.25 전쟁]] 때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캐나다군|군대]]를 파병했고, 가평 전투 당시 [[한국군]], [[뉴질랜드군]], [[호주군]]과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과 [[조선인민군]]의 침입을 같이 막았다. 현재도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동맹국들 중 한 곳이고, [[김씨네 편의점]]과 같이 [[한국-캐나다 관계]]에서 서로 문화교류도 하고 있다. 당연히 [[중국]]을 같이 견제하기도 한다. 사실 [[대한제국|구한말]]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스코필드 박사]]가 [[3.1 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을 도와주고, 많은 [[장로회]] [[목사]], [[장로]]들과 [[성공회]] [[신부(성직자)|신부]]들이 한국에 와서 선교하기도 했다. 의외로 한국이 서구권과 일찍 교류한 국가이기도 하다. * [[한국-콜롬비아 관계|대한민국 - 콜롬비아]]: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6.25전쟁에서 군사를 보내주었고 북핵 도발에 크게 비난하였으며 대북제재도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다. * '''[[한태관계|대한민국 - 태국]]''': 일본과의 관계가 깊은 나라지만 [[한류]]가 유행하는 등 한국과의 사이도 좋은 편이다. 6.25전쟁때 한국을 도와주었다. * '''[[한국-튀르키예 관계|대한민국 - 튀르키예]]''': 튀르키예는 [[6.25 전쟁]]을 시작으로 군사적, 문화적으로도 미국 못지않은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며 튀르키예 입장에서도 [[일본]]과 함께 형제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에르도안]] 집권기부터는 다소 서먹서먹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국민 감정은 여전히 매우 우호적이다. 다만 튀르키예 역시 일부 국민들에게는 [[반한|한국에 대한 반감]]도 약간은 존재한다. * '''[[한폴관계|대한민국 - 폴란드]]''': 오랜 기간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며, 경제 교류 또한 활발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2022년 대한민국-폴란드 방산계약]]을 체결하는 등 군사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 '''[[한불관계|대한민국 - 프랑스]]''': 과거 [[프랑스인]] [[가톨릭]] [[사제(성직자)|사제]]들을 박해한 [[병인박해]]로 인해 [[병인양요]]를 크게 벌이며 [[외규장각]]의 문서의 문화재들을 강탈하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6.25 전쟁]] 때 [[유엔군사령부|유엔군]]으로 참전하였고 휴전 후에도 한국이 부흥할 수 있도록 재건사업에 직접 참여하면서, 한국과 프랑스의 긴밀한 관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해주고 프랑스 조계 지역의 경찰들이 [[김구]] 주석을 보호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또한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에 [[하푼]] 미사일 구매의사를 표했으나, [[일본]]의 방해성 로비에 의해 결렬되자, 프랑스에 [[엑조세]] 미사일 구매의사를 표시했다. 허나 이번에는 프랑스가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하며 망설이자 당시 3류 여객기 회사 [[에어버스]]의 [[A300]]을 당시 반쯤 공기업이었던 [[대한항공]]을 통해 대량 구매하겠다고 발표했고, 프랑스는 결국 엑조세와 A300을 공동 판매했다. 당시만 해도 실적도 부족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신생회사였던 에어버스는 대한항공의 대량구매와 성공적인 운용을 통해 각국의 신뢰를 쌓아, [[보잉]]과 어깨를 견주는 세계 일류의 항공기 제조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 공로로 당시 대한항공 사장이던 [[조중훈]] 사장은 외국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등급 훈장 그랑도피시에 훈장을 수훈받았다. 그 외에는 한국 서울에 '파리공원'이, 프랑스 파리에 '서울공원'이 있다. [[한류]]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를 [[유럽]]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 중 하나도 동양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프랑스이며, [[2019년]]에는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 건물 전체를 사용할 정도로 거대한 프랑스 파리의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이 새롭게 개원하기도 했다.[[https://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153|#]] * '''[[한국-핀란드 관계|대한민국 - 핀란드]]''': 전체적으로 서로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다. 한국에서는 핀란드의 영어교육을 벤치마킹 해야한다는 주장이 한때 있기도 했으며 핀란드의 사회 전반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이 많다. 핀란드에서도 한국어나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또한 한국이나 핀란드나 자기 나라의 대외적인 이미지에 관심이 많으며 외국인의 입에서 자기 나라에 대한 말(특히 칭찬)이 나오면 겉으로든 속으로든 환호한다는 것이 어째선지 동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 '''[[한호관계|대한민국 - 호주]]''': [[6.25 전쟁]] 때 [[호주군]]이 대한민국에 참전한 적이 있고 명분이 없어 미국의 우방국들마저도 외면한 [[베트남 전쟁]] 때도 [[한국군]]과 함께 참전했다. 특히 한국전쟁 중에 호주 육군의 3대대가 가평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과 크게 전투를 벌여 승리해 나중에 '''가평부대'''라고 불리게 되어서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직접 방문해 기념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현재에 이르러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연합훈련을 벌이기도 하며, 서로간의 전략적 파트너로 구성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